국립극장(극장장 박인건)은 오는 5월 10일(금)부터 5월 12일(일)까지 해외초청작 <에브리우먼(Everywoman)>을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공연한다. ‘다큐멘터리 연극’의 거장이자 현시대 가장 논쟁적인 연출가로 통하는 밀로 라우(Milo Rau)의 첫 번째 내한 작품이다.
<에브리우먼>의 연출과 극본을 맡은 밀로 라우는 언론인이자 사회활동가로도 활동했으며, 2007년 ‘국제정치살인연구소(IIPM, International Institute of Political Murder)’ 창단 후 사회의 현실을 꼬집는 파격적인 주제와 신랄한 현실 고발을 담은 작품을 선보였다. 2009년 정치 연극 <차우세스쿠의 마지막 날들>이 아비뇽 페스티벌에 초청되며 연출가로서 이름을 알렸다. 2018년부터 2023년까지 벨기에 엔티겐트(NTGent) 극장의 예술감독을 지냈으며 현재는 오스트리아 빈 페스티벌의 예술감독을 맡고 있다.
<에브리우먼>은 현실과 공연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수많은 질문을 던지는 밀로 라우 특유의 연출기법이 잘 드러나는 작품인 동시에 전작들과 달리 인간의 숙명에 대해 보다 근원적인 성찰을 추구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2020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100주년 개막작으로 초연되었으며 1920년작 휴고 폰 호프만슈탈의 연극 <예더만(Jedermann)>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 독일어로 ‘모든 사람(Everyman)’이라는 의미를 지닌 <예더만>은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게 된 한 남자의 이야기를 우화 형식으로 풀어낸 작품이지만, <에브리우먼>은 이와 대조적으로 실제 말기암 판정을 받고 죽음을 앞둔 여인의 모습을 보여주며 죽음에 대해 보다 현실적인 접근을 제시한다.
창작진은 작품 제작을 위해 베를린의 모든 호스피스와 접촉하며 실제 투병 중인 환자들 중 작품에 출연 가능한 배우를 찾아 나섰고, 그 과정에서 췌장암 말기 선고를 받은 헬가 베다우(Helga Bedau)를 캐스팅했다. 스크린에는 헬가 베다우의 사전 녹화된 영상이 등장하며, 무대에는 칸 황금종려상·골든글러브 수상작 ‘하얀 리본’에 출연한 배우 우르시나 라르디(Ursina Lardi)가 독백을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한 각자의 단상을 80분간 방대한 대사로 쏟아낸다. 스크린과 무대 위에서 두 여성의 자전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들이 무대와 현실의 경계를 뛰어넘어 교차되고, 이를 이끌어가는 라르디의 섬세한 연기와 영상 속 베다우와의 교감은 관객들에게 진한 여운과 감동을 남긴다.
<에브리우먼>은 작품 속에서 반복되는 ‘모든 사람은 결국 죽는다’는 주제가 결국 관객 모두에게 해당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일깨우며 서로에 대한 공감과 연대를 호소한다. 라우는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에 대해 “죽음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극장이라는 공간에서 서로에게 귀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동체가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우리는 어느 정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다”며 “피할 수 없는 죽음 앞에서 서로의 존재에 관심을 가지고 친절한 마음으로 연대하는 것이 구원이 될 수 있다”라고 밝혔다.
작품은 독일어로 공연되며 한국어 자막이 제공된다. 5월 11일(토) 공연 종료 후에는 밀로 라우와 극본을 함께 쓰고 출연한 우르시나 라르디와 작품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관객과의 대화’ 시간이 마련된다.
우리 삶의 마지막에는 무엇이 남는가 해외초청작 <에브리우먼(Everywoman)>
◈ ‘다큐멘터리 연극’의 거장, 밀로 라우 작품의 첫 내한
- 역사적 사건을 무대 위에 최대한 가깝게 재현하는 ‘다큐멘터리 연극’의 선봉자
- 금기시된 주제·현실 고발을 다룬 작품들로 현시대 가장 논쟁적인 연출가로 꼽혀
◈ ‘모든 사람은 죽는다’ 인간의 숙명에 궁극적 질문을 던지는 작품
- 휴고 폰 호프만슈탈 <예더만(Jedermann)>을 모티브로 죽음에 대한 현실적인 접근 제시
- 죽음 앞에서 유일한 구원인 연대와 인류애 회복 강조
◈ 현실과 무대의 모호한 경계 속 진한 여운과 감동 선사
- 스크린 속 말기암 환자의 실제 경험과 무대 위 배우의 자전적 독백이 교차
- 칸 황금종려상·골든글러브 수상작 출연배우 우르시나 라르디의 섬세한 연기 돋보여
‘다큐멘터리 연극’의 거장, 밀로 라우 작품의 첫 내한 <에브리우먼>
<에브리우먼> 공연 사진 ©Armin Smailovic
현시대 가장 논쟁적인 연출가로 평가받는 밀로 라우의 작품이 국립극장 해외초청작 <에브리우먼>으로 국내 관객들에게 첫선을 보인다. 라우의 작품은 2020년 LG아트센터 ‘디지털 스테이지’ <콩고 재판> 실황 영상을 통해 소개된 바 있으나, 무대에서 국내 관객들을 직접 만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밀로 라우는 스위스 베른 출신으로 취리히, 파리, 베를린에서 독문학, 로만어문학, 사회학을 공부했으며 신문사·잡지사 등에서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2007년 연극·영화제작사 ‘국제정치살인연구소(IIPM, International Institute of Political Murder)’ 를 창립해 사회의 현실을 꼬집는 파격적인 주제와 신랄한 현실 고발을 담은 다양한 프로젝트들을 진행했다. 2009년 정치 연극 <차우세스쿠의 마지막 날들>이 아비뇽 페스티벌에 초청되며 연출가로서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다큐멘터리 연극’의 선봉자로 꼽히는 라우의 작품은 주로 폭력적인 역사, 금기시된 주제들을 소환해 현실을 고발하는 정치·사회극이 주를 이룬다. 600만 명이 넘게 사망한 콩고 내전의 원인과 과정을 밝히는 <콩고 재판>,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 세력이 점령한 이라크의 모술을 배경으로 한 <모술의 오레스테스> 등이 그의 대표작이다. 사실에 기초한 자료를 수집하고, 자료조사와 인터뷰 등을 통해 역사적 사건을 빈틈없이 고증해 무대 위에 최대한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재현해내는 ‘재연’ 기법을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라우는 관객들이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신랄하고 불편한 현실을 목격함으로써 각성하고 궁극적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움직임을 이어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2018년 벨기에 엔티겐트 극장에 예술감독으로 취임하며 발표한 겐트 선언문에서도 “연극은 단순히 현실을 보여주기만 할 뿐만 아니라 세상을 바꿔야 한다”며 그의 강력한 예술관을 표명하기도 했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 인간의 숙명에 궁극적 질문을 던지는 작품
이번에 내한하는 <에브리우먼>은 현실과 공연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수많은 질문을 던지는 밀로 라우 특유의 연출 기법이 잘 드러나는 작품인 동시에 전작들과 달리 인간의 숙명에 대해 보다 근원적인 성찰을 추구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2020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100주년 개막작으로 초연되었으며, 80여 년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시작을 알리는 고정 레퍼토리로 공연돼온 1920년작 휴고 폰 호프만슈탈의 연극 <예더만(Jedermann)>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 독일어로 ‘모든 사람(Everyman)’이라는 의미를 지닌 <예더만>은 영국 중세 도덕극을 현대적으로 각색한 작품으로 갑자기 찾아온 죽음 앞에서 선행과 신앙으로 회개하며 구원받는 과정을 우화적으로 그렸다. 반면에 <에브리우먼>은 실제로 말기암 판정을 받고 죽음을 앞둔 여인의 모습을 통해 죽음에 대해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접근을 제시한다.
라우와 함께 극본에 참여한 우르시나 라르디는 “작업 초기 단계에서는 <예더만>을 두고 ‘글로벌 아티스트’ 등 전혀 다른 주제로 작품에 접근하기도 했으나,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모든 사람은 죽는다’라는 중심 모티브에 집중하기로 결정했다”며 제작 배경을 밝혔다. 이들은 <에브리우먼> 제작을 위해 베를린의 모든 호스피스와 접촉하며 실제 투병 중인 환자들 중 적합한 출연자를 찾아 나섰고, 그 과정에서 췌장암 말기 선고를 받은 전직 교사 출신 헬가 베다우로부터 죽기 전 무대에 서보고 싶다는 바람이 담긴 편지를 받는다. 라르디는 베다우를 캐스팅한 배경에 대해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자기연민 없이 생각과 감정을 솔직하게 공유한다는 점에서 진정한 파트너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에브리우먼>은 모든 인간의 숙명인 죽음이라는 주제에 대해 무대 위 두 여인이 나누는 성찰과 따뜻한 상호작용을 보여주며, 구원의 방법으로서 서로 간의 연대와 인류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밀로 라우는 “죽음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극장이라는 공간에서 서로에게 귀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동체가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우리는 어느 정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다”며 “피할 수 없는 죽음 앞에서 서로의 존재에 관심을 가지고 친절한 마음으로 연대하는 것이 구원이 될 수 있다”라며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밝혔다.
현실과 무대의 모호한 경계 속 진한 여운과 감동 선사
<에브리우먼> 공연 사진
©Armin Smailovic
작품 속 스크린에는 실제 췌장암 말기 환자로 죽음을 앞둔 헬가 베다우의 사전 녹화 영상이, 무대에는 칸 황금종려상·골든글로브 수상작 ‘하얀 리본’에 출연한 배우 우르시나 라르디가 홀로 등장해 극을 이끈다.
무대 위에는 큰 바위 두 개, 피아노, 카세트 플레이어 그리고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여러 개의 종이 상자가 쌓여 있다. 무대 위의 큰 돌덩어리는 라르디가 자랐던 곳의 들판에 놓여 있는 돌이자, 베다우가 취미로 수집하는 돌을 본떠 만든 동시에 그녀를 죽이고 있는 종양을 상징하기도 한다. 배우가 직접 무대 위에서 힘겹게 바위를 옮기는 모습은 마치 그리스 신화 속 ‘시지프스의 바위’를 연상시키며 영원히 반복되는 인생을 비유적으로 보여준다.
라르디는 대부분의 공연을 독백으로 이어가는 가운데, 중간중간 영상 속 베다우에게 말을 걸고 교류한다. 그 과정에서 두 사람 모두 고향을 떠나 베를린으로 온 점, 아들 하나를 둔 어머니라는 점 등 서로의 공통점을 발견하기도 하고 무대 위 소박한 소품들에 얽힌 각자의 사연을 나누며 삶과 죽음과 연관된 수많은 순간을 가감 없이 토로한다.
80분간 방대한 대사로 쏟아지는 두 여성의 자전적 경험과 죽음에 대한 성찰을 통해 관객들은 ‘모든 사람은 죽는다’는 당연한 명제를 또 다른 관점에서 체감하게 되고, 현실과 무대의 경계를 오가는 두 여성의 따뜻한 교감은 진한 여운과 감동을 선사한다.